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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ing in the left 

Klaus V Reinherz / OC

Written by @Ampolibra

* 베스의 남편이 죽지 않은 채 함께 HL로 넘어왔다는 IF설정입니다.
* 분량 조절 실패했습니다
* 불륜물..이죠. 남편 분량이 없다시피해서 티가 날지 모르겠지만 불륜물입니다 열람주의는 구색입니다

 

초여름의 사랑스러운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뒤섞인 장식이 아름다운 야외 예식장은 단정하고 우아한 예복 차림의 하객들로 붐볐다. 매섭던 햇살이 수그러든 오후의 풀밭에 무수한 구둣발이 남긴 자국 위로 붉은 카펫이 곧게 나아간 끝에는 목사가 없는 낮은 단상이 있다. 예식장의 정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카펫 양 옆으로, 새하얀 식탁보가 애프터눈 티세트를 살뜰하게 받쳐준 둥근 테이블. 그를 중심으로 하여 자리한 네 개의 흰 의자, 지정된 자리에 앉은 이계인과 휴마. 서른 명의 신사숙녀들. 
마담 베스 헤브 우드의 리마인드 웨딩 초대장을 받고 모인 자들이었다.

 

늦지 앉게 도착해 카펫 쪽 자리에 앉은 크라우스는 문득 악수를 청하는 맞은 편의 이계인과 차분한 인사를 나누었다. 깡마른 체형과 상반되는 넉넉한 품의 서머 턱시도는 단추가 떨어져서 앞을 여미지 않은 채였다.

"재밌지 않소?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청첩장을 무작위로 뿌렸다는군. 글쎄, 눈 앞에 검은 광채가 번쩍 하더니 손에 편지봉투가 날아들지 뭐요. 재미삼아 식을 훼방놓을 미친 놈이 가득한 도시에서 정말 겁없는 짓을 했어."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하지요. 면식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순수한 축하를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살기를 숨긴 자도 없어뵈고. 헤르살렘즈 롯의 주민들이 정말 청첩장에 쓰인대로 꽃을 준비해오다니! 철저한 검문을 했든, 단순히 운이 좋았든 오늘 주인공은 신부요. 모든 준비를 그녀 혼자 했다더군. 얼른 얼굴 좀 보고 싶어. 휴마일지 이계인일지 궁금하지 않소?"

크라우스가 입을 떼기도 전에 갑작스레 이계인이 상체를 틀어 뒤쪽을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그를 신호로 모두가 풀밭을 가로질러 식장을 향해 걸어오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티아라 대신 착용한 칼미아 생화 장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크라우스는 가져온 꽃다발 포장을 매만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컸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신부는 아름다웠다. 모두가 모인 예식장이 마치 신화나 동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 소문난 공주의 생일 연회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한 저녁 하늘 아래 다감한 갈대밭처럼 따스한 베이지의 머리카락이 맑은 얼굴 곁으로 흘러내려 부드럽게 물결친다. 어깨와 팔을 드러내고 가슴을 덮은 흰 드레스는 상체를 편안하고 깔끔한 선으로 잡아올렸고 허리께에서 풍성하게 부풀린 치맛자락이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닮았다. 발끝까지 가려 잔디에 스치는 끝단은 풀물이 들기는커녕 먼지 한 톨도 없었으며 우아하고 부드러운 걸음걸이는 물 위의 백조를 연상시켰다. 
신부의 걸음이 카펫을 밟는 순간 크라우스는 그녀가 맨발임을 알았다.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옮기자 마침 꿈에 잠긴 듯 반쯤 감고 있던 눈꺼풀이 올라갔다. 하늘을 담은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자들은 모두 낮은 탄성을 터뜨리며 홀린 듯 박수를 쳤다. 뒤이어 식장에 입장한 신랑과 반지를 교환한 신부는 맹세의 키스를 생략한 채 하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남편이 잠깐 신부를 노려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크라우스는 조금 의아했다. 
이 자리에 모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로 시작된 말은 간단했다. 신부는 대붕락으로부터 반 년에 걸쳐 헤르살렘즈 롯에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하고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참여의사를 가져 모인 주민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청첩장을 돌렸다. 그리고 축하의 증거 또한 원했기에, 하객 모두 꽃을 준비해달라 부탁했던 것이다. 
이는 성공적이었다. 서른 다발의 꽃은 대부분 붉은 장미였고 그 중에 심심찮게 이계의 꽃도 있었다. 하객 대표로 꽃을 전달할 자는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는데, 바로 크라우스였다. 그는 단상으로 걸어가 자신이 직접 키워낸 꽃을 건넸다. 하얀 꽃잎 속 붉은 무늬가 선명하게 타오르는 칼미아. 신부의 머리장식과 같은 꽃을 준비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녀가 눈에 띄게 기뻐하자 크라우스의 마음도 흐뭇해졌다. 

"베스 헤브 우드에요."
"크라우스 폰 라인헤르츠입니다."

꽃다발을 끌어안은 신부가 짓는 미소에 마음이 동하는 건, 지금 이 결혼식이 그녀와 다른 남자의 결혼식에 순수한 축하만 건네줄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크라우스는 신부의 반지에 눈길이 가는 걸 멈출 수 없어 성급하게 단상에서 물러났다. 

소란스럽군. 세인트 알라니아드 중앙병원 앞을 지나가던 크라우스는 몇 십 미터 앞 교차로에서 주민들이 포위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신부를 보며 생각했다. 무슨 소란인지 관중의 수가 불어나고 있었지만 크라우스의 시선은 그런 번잡함은 아랑곳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복장은 결혼식 날과 판이하게 달랐다. 맑고 사랑스러운 릴리움 꽃잎이 타버린 듯 검은 천.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숏케이프가 목과 어깨를 가린 아래로, 일반적인 경우보다 기장이 길어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시스 드레스와 똑같은 색의 이브닝 글러브. 그녀는 아무 장식도 없는 옷을 한 겹 걸치고 있을 뿐이었지만 크라우스는 그것이 지금껏 봐온 어느 예복보다도 무거워보였다.
푸른 눈으로 어떤 남자를 곧게 응시하던 신부는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짧게 대답했고, 남자는 언성을 높이며 격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를 따르듯 인파가 가진 단순한 흥미가 점차 격앙되며 웅성거렸다. 자세한 상황을 몰라 소란의 중심으로 걸음을 옮기던 크라우스는 분노를 삭이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 주인은 자신이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고 느꼈다. 그는 신부의 남편이었다.

"그만."

별안간 군중의 소음이 뚝 끊겼고 신부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작은 여성 휴마의 걸음을 방해하는 자는 없이 모두가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단단히 틀어올려 동그랗고 깔끔한 모양의 머리카락은 회백색 대기 속 말간 빛을 띠었다. 그녀의 발소리는 서너번 더 울리다가, 크라우스의 앞에 멈춰섰다. 부드러운 선의 정수리가 허탈한 웃음소리와 함께 조금 흔들리더니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며 입술을 열었다.

"잠시 내 뒤에 가만히 있어요."

어느새 몸을 돌려 제 앞을 막아선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석을 씹어삼키고 푸른 불꽃을 몸에 두른 남편이 그의 아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라우스는 다급하게 말했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막혀버렸다.

"부인, 위험..!"
"이 순간만은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되어주세요."

크라우스가 우뚝 굳어버린 한 순간, 푸른 불길 위로 납빛이 나타나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이윽고 몇 초 뒤 그 곳에는 옷과 인간의 피부가 타는 냄새만 남아있었다. 
신부도, 남편도 찾아볼 수 없는 교차로에서 인파는 맥없이 흩어졌다. 언제 소란이 있었냐는 듯 클락션과 잡상인의 호객멘트에 귀가 따가운 거리로 돌아온 것이다. 크라우스는 끔찍했던 충돌음이 환청인 마냥 말끔한 벽돌타일 바닥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돌아갔다. 
크라우스가 그녀를 다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신부, 베스 헤브 우드는 그 만남을 먼저 원하고 있었다. 중앙병원 근처 교차로에서의 소란 이후 사무실로 돌아간 크라우스가 앨범에 꽂아두었던 청첩장을 꺼내 펼치자 빳빳한 종이에 글씨가 떠오른 것은 결코 실수도 우연도 아니었다. 

"너를 만날 때마다 남편 소식도 같이 듣게 되는구나."


검은 장갑을 낀 왼손 약지에는 여즉 반지의 부피감이 있었다. 크라우스는 선물로 가져온 꽃다발을 든 채 그녀가 자리한 소파의 빈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크라우스의 고정석으로 지정된, 한때 멀쩡했던 소파는 어느새 그 자리만 쑥 꺼져있었다. 


"...알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네. ..." 
"그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경찰 쪽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건지 추궁하진 않을테니 안심하렴. 평범한 도련님."

이브라와 HLPD는 투명한 빛을 띠는 광석 형태의, 복용 시 괴력과 광란 효과를 부여하는 약품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협업하고 있었는데, 제작자는 체포되었지만 남은 물량을 훔친 누군가가 도시에 아직도 숨어있다는 문제가 남았다. 베스가 짧게 웃고는 왼손을 뻗어 크라우스 품 속의 꽃을 손 끝으로 훑었다. 
베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갈 때마다, 크라우스는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 태연하게 곁을 차지한 그녀의 손에 꽃과 포장지가 눌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베스는 그것을 곧잘 알아채고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떼는 것이었다. 이 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칼미아구나, 아직 한창일 시기지."
"음. 결혼식 날 머리에 달고 계셨던 꽃인데 기억하십니까?"
"남편이 골라줬단다. 사실 흰 장미를 원했는데.. 그 날 네가 뽑혀서 다행이었어."
"제가 준비한 꽃은 칼미아였습니다만, 어째섭니까?"
"정말 아름다웠거든."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광경에 베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가 드물게도 그늘졌다. 그를 놓치지 않은 크라우스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자 베스는 표정을 고치지 않은 채 말했다. 꽃을 쓰다듬던 작은 손이 그의 허벅지 위에 내려앉았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내 것으로 삼고 싶었단다. 남편과 반지를 교환하는 중에도 몇 번이고 흘겨보았지. 타오르는 붉은 꽃을 품은, 상냥하고 깨끗한 눈송이."
"...베스."

베스의 손이 어느새 크라우스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얌전히 손길을 받으며 녹색 눈동자를 움직여 어딘가를 응시하더니 꽃을 테이블에 밀어놓고선 그녀의 왼팔을 감싸고 있는 이브닝 글러브를 벗겨냈다. 언뜻 보면 창백할 정도로 하얀 팔과 손이 드러나고 약지에는 조금 헐거운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크라우스."
"당신이 꽃을 원하고 있을 때 저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것을..."
"괜찮으니 빼렴."

크라우스는 망설임 없이 부인의 결혼반지를 빼냈다. 그리고는 가장 여린 줄기를 가진 칼미아 한 송이를 가져와 약지의 반지 자국에 대고 조심스럽게 엮어 고리를 만들었다. 베스는 새 반지를 낀 손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튀어나온 송곳니와 툭 불거진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쓸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원히.." 영원히 너를.

약지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지만, 크라우스는 개의치 않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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